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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삶과 업적

by 삶은개발 202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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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537년 1월 17일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강릉부 죽헌동 오죽헌 몽룡실에서 부친 이원수와 모친 사임 신씨(신사임당)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외가였던 강릉에서 자라면서 강을 낀 산천을 보며 심신 수양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6살 때 강릉을 떠나게 되면서 부계 집안이었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로 이사하게 되었고, 이이 본인의 고향은 모계 집안이었던 강릉이지만 본가는 부계 집안이었다. 그래서 이이의 아호인 율곡도 파주의 율곡리에서 본따 만든거다.
이이는 아버지인 이원수에 관한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았고, 이이와 형제들이 아버지와 많이 다툰 것으로 추측되는데 서로 부자간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은 아버지 이원수가 결혼할 때부터 가세가 좋지 않았고 자기보다 가세가 강했던 집안의 신사임당과 결혼했는데 하필 신사임당은 엄청난 인물이었기도 했었고, 그의 아들마저도 아버지의 능력에 한참 뛰어넘는 인물들이었으니, 아무래도 소외감을 느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1548년 13세 어린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면서 조광조의 문인이었던 백인걸 문하에서 공부했었다. 하지만 1551년에 어머니 신사임당이 사망한 후에 3년간 시묘살이를 했고, 아버지 이원수가 계모 권씨와 재혼하였고, 관례를 마친 후 상복을 벗은 후에도 어머니를 잊지 못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그렇게 불가에서 생활하다가 회의를 느끼게 되면서 하산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 유학을 전심하게 되었다.
1557년에 성주 목사 노경린의 딸이었던 곡산 노씨와 혼인했다. 1558년에 퇴계 이황을 만나기 위해 도산으로 갔었고 이후에도 서찰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학문을 보완하게 된다.
1561년 부친상을 당하게 되며 다시 3년상을 치르게 되었다. 이후 출사 준비를 마친 후 생원시, 진사시를 거치며 문과 장원 급제를 하게 되었고, 정6품 호조정랑으로 등용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575년 을해당론, 사림이 동이과 서인으로 갈라지면서 붕당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자마자 김효원과 심의겸을 모두 지방관으로 좌천시켜 버렸는데, 당대 집권층이었던 동인은 이이를 맹렬히 규탄하였다.
나중에 이이의 제자들이 성장하면서 서인의 주된 세력을 형성하였고, 본래 중립적인 위치에 서있던 이이가 서인의 중추로 되는 모순적인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1581년 십만양별설을 주장하면서 군사훈련 강화에 대해 주장했지만 선조와 대신들의 격한 반대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이후 탄핵 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후학 양성에 대해 전념하게 되었다. 그 후 다시 조정의 호출을 받게 되면서 이조판서와 판돈령부사를 지냈다. 그러다 1584년에 서울 대사동 사저에서 세상을 떠났다.

업적

1. 변법 경장론
이이는 조선이 다시 한번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면서 관민에게 다시 개국 초기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며 변법 경장론을 주장했다.
이이가 말하는 변법 경장이란 나라의 기강이 무너져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하나 지적한 후 주장한 것이다.
문벌이나 출신보다는 능력 있는 사람을 고용하고 신분을 가리지 말고 평민을 포함시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붕당을 막기 위해 사림의 공론을 존중하고 사기를 높여야 한다, 사창제를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해야 한다 등을 주장했다.

2. 군제, 공직 개혁
1583년에 병조판서로 임명되면서 국방력 강화하기 위해 시무육조를 계진했는데 내용은 어진이를 등용하고, 군대와 백성을 제대로 키우며, 재용을 넉넉하게 마련해야하고, 국경을 견고하게 지켜야 하고, 전쟁에 나갈 군마를 충분히 확보한 후 길러야 하고, 마지막으로 교화를 밝혀야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때부터 서얼 제도를 폐지하고 신분과 관계없이 천민이나 노비 중에서도 능력이 있다면 평등하게 공직을 발탁하여 나랏일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3. 십만 양병설
이이는 선조에게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동인과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그는 일본의 도발에 대한 대응에 맞서기 위해 10만명의 정병을 양성하며 일본 침략을 대비해야 할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동인과 서인은 이이의 생각이 너무 지나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호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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