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선덕여왕의 삶과 최후

by 삶은개발 2024. 4. 22.
반응형

소개

선덕여왕의 출생연도는 해당과 관련된 정보가 기록에 남아있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다만 즉위 당시의 나이가 50살 전후로 학자들 사이에서 추정한 나이이다.
삼국사기에선 진평왕의 맏이였고, 본명은 덕만이었고 덕만공주라고 불리웠으며 나중에 시호를 선덕을 쓰게 되면서 선덕여왕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에선 형제자매 서열에 관한 기록 조차 없어서 그냥 진평왕의 딸로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진평왕이 아들 없이 죽고 말았는데 화백회의에서 진평왕의 왕녀인 덕만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기 시작했고, 성조황고라고 성스러운 조상의 혈통을 이어받은 여황제라는 뜻으로 존호를 올렸다고 한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선 김씨 성골의 남자가 다하였으므로 여왕이 왕으로 선 것이다 라고 밝히고 있다고 한다.
즉위한 해인 건복 49년에 을제 또는 을찬으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케 하였고, 거기서 더해 각지에 관리를 파견하면서 홀아비, 홀어미, 고아, 독거노인 등 어려운 처지의 백성들을 돕게 했으며, 당에 사신을 파견하는 일을 추진했다고 한다.
그러고 633년 정월에는 스스로 신궁에 제사를 올리면서 여러 주군의 조세를 1년간 감해 주었다고 한다. 거기서 8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공해온 시기이기도 했다.
즉위 3년째 되던 634년에 인평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게 되며 이 해에 분황사가 완공을 완료했다고 전해진다. 635년 겨울에는 이찬 수품과 용수를 시켜서 각지 민심을 위로하게 되었다.
또 당으로부터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에 봉해졌다고 한다.
646년 정월에는 수품을 상대등올 삼으면서 3월에 병이 나자마자 이를 기양하기 위해서 황룡사에서 큰 법회를 열었다고 한다. 같은 해에서 자장 법사는 불법을 배우기 위해서 당으로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5월 백제 장군인 우소가 여근곡에 쳐들어오면서 알천, 필탄 등의 두 장군들을 출격시키면서 승리를 얻어내는 성과를 이루었다고 한다.
638년에 고구려가 칠중성을 공격하면서 또 한 번 신라가 위태로웠는데 다행히 다시 대장군이었던 알천을 다시 파견보내면서 이를 승리로 가져오면서 신라의 백생들의 심리를 잠재웠다고 한다.
639년에는 북부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서 하슬라를 북소경으로 삼았으며, 사찬진주를 보내어 지키게 명령하였다고 한다.
642년에 정월에 또 다시 당에 조공하면서 동시 백제의 의자왕이 이끄는 군사들이 신라의 서쪽 40개 성을 함락시켜면서 신라에겐 큰 위기가 닥쳐왔었고 여기에 더하면서 당과 외교 거점이었던 당항성마저 공격해오자 이를 빌미로 당에게 사신을 보내면서 도움을 요청하였다고 한다. 8월에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하면서 김춘추의 사위였던 이찬 품석이 전쟁에서 사망하게 된다. 그렇게 신라의 정세가 점점 불리해지면서 결국 여왕은 김춘추를 통해서 고구려를 파견 보내며 동맹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구려의 보장왕이 말도 안되는 선제 조건을 요구하게 되면서 김춘추는 이를 거절하자 그가 감금되었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김유신을 보내어 김춘추를 구출시킬 수 있게 도와주게 된다. 643년에 지속적으로 당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지만 당은 이를 거절하게 되었고 지속적으로 조공을 바친 신라의 모습을 보고 결국 당은 고구려에게 공격을 멈추라고 요청을 하게 되지만 고구려는 이를 거절하게 되고 결국 신라의 여왕은 9월에 김유신을 대장군으로 직위를 올려주면서 백제를 공격하라고 명하였고, 이를 받아드리면서 결국 백제의 일곱 성이나 함락시키는 대업적을 이루게 된다.
647년에 여자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품었던 상대등 비담이 염종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때 김유신을 파견하여 비담을 상대하게 하였지만 반란 와중에 1월 8일에 승하하게 된다.

최후

말년이었던 재위 14년이 되자마자 대신들의 반발을 더 이상 억누르기 힘들정도로 극심해졌는데, 이를 보다못한 상대등 비담이 염종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사건을 비담의 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반란 도중에 선덕여왕은 사망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원인은 반란군에게 피살당해서인지, 이미 병이 있었고 거기서 반란의 여파로 인해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라든가 등의 이유들이 나오곤 있지만 확실하게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역사적으로 적혀있는 바가 없다. 그렇게 서거하게 되면서 다음 왕으로는 선덕여왕의 사촌이었던 진덕여왕이 다음 왕으로 오르게 된다.

반응형